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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고언

2019-03-26(화) 09:17
[기자수첩]제갈대종 기자=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일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 같은 전략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자민당에 있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방벽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면서도 강제징용 판결, 종군 위안부 문제, 초계함 레이더 파문 등에서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아베 총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판국에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법원에 제기한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압류신청’이 받아들여졌다. 25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최근 대전지방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한 압류를 결정했다. 채권액은 양금덕 할머니 등 4명이 제기한 금액 8억400만원이다. 법원의 압류 결정으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해당 상표권이나 특허권에 대해 권리이전, 양도, 설정 그 밖의 처분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의 결정으로 전범기업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공식 개시됐다.

앞서 우리 대법원은 작년 11월 29일 양금덕 할머니와 유족 5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승소판결했다. 피해자들은 이후 미쓰비시 측에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고, 양 할머니 등은 다시 지난 7일 미쓰비시 자산에 대한 압류명령을 신청했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협의를 요청했다고 한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는 협정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 생기면 우선 양국이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돼 있다. 일본은 양국의 외교 협의에서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3국 위원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의 설치를 요구하고, 거기서도 해결이 안 되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일부 언론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 인상이나 일본 내 한국 기업의 자산압류로 맞대응하는 방안까지 내부적으로 거론된다는 보도가 있다.

만약에 이런 방식으로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한일관계는 정말 회복이 어려운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 서로 국민감정에 치우쳐 앞을 생각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당장엔 득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에는 치명적 독이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파탄나면 당장 두 나라 모두 경제·외교·안보 분야에서 큰 손실이 발생한다. 더욱이 북한 비핵화 협상을 놓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마당에 한·일간 공조가 깨지면 동북아 평화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일본의 솔직한 반성과 사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행한 과거는 상처를 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 회복에 나서야 한다. 아베 정권의 역량이 부족해 삐걱거린다면 우리가 먼저 갈등 심화에서 벗어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일갈등이 양국 국민들 사이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때까지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웃한 두 나라가 국제여론전을 펼치며 서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아베 정권은 군국주의 시절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한 일본의 진보 지식인 226명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제발 한 번만 피해자 입장에서 한일관계를 바라보라는 뜻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양국 관계 발전에 역행하는 비외교적 발언을 삼가야 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해법은 일제강점기 불행한 역사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 위에서 냉정하게 모색돼야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당부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가 아닌 오늘의 일본에 사는 일본인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 차원에서 일왕의 사과를 원론적으로 언급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발언이 우리에게는 사이다처럼 시원할 수 있으나, 해석에 따라 천황을 신성시하는 일본인의 분노를 자아낼 수 있다. 일본인들이 문 의장 발언의 전체 맥락을 읽지 않고 일왕의 사과를 요구한 것에만 치우쳐 발끈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기술이다. 일본 국민이 한일관계의 정략적 이용을 스스로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양국은 지난해 말 외교당국 간 국장급 협의에서 징용배상 판결 문제가 양국 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측이 공감했다고 한다. 한일 두 나라 외교장관도 전화통화를 하고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 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국제법상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피해자들의 보편적 인권 문제에도 해당하는만큼 일희일비하는 대응은 자제하면서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진지하게 해법을 찾는다면 관계 회복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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